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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6 구덩이 파서 묻기 (3)

구덩이 파서 묻기

Posted 2007/12/06 01:20

나는 군대 제대 후 학교를 다니면서 동시에 사회생활을 했다.

당시 교수님과, 회사 상사께 배운 인생에서 가장 도움되는 지식이 바로 "언변술" 이었다. 이 세상은 정말로 똑똑할 필요가 없이 똑똑하게 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정말로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다 팔면 병신이고 "좋아보이는 허접한 상품을 괜찮은 가격에 샀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정답이라는것도 배웠다.

오늘 이뭐병씨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도덕적 공격을 단숨에 떨치고 도망가는것을 지켜보고, 적어도 저녀석이 능력(위에 말한 진짜 증력이 아닌 처세술)은 있구나 하고 생각할뻔 했다.

여지껏 남들에게는 가르쳐주지 않고 나만 알고 살아야지.. 라고 생각했던 꽤 훌륭한 혀놀림스킬 하나를 블로그에 흘려보고자 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나만의 지식을 가르쳐주면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대중에게 진리를 떠들어도 결국 그게 알짜인지 알아보는 귀 있는 자들에게만 소용 있다는것을 2000년 전 예수님도 알고계셨으니까.

나는 한때 웹질과 동시에, 직접 고객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거나 계약, 회의 등에 참가하기 위해 '을'을 만나러 회의장소에 나가는 일을 했던 때가 있었다. 직접 상품을 개발한 개발자가 아닌 마케터가 고객을 만난다면 상품의 장점만을 부각시켜 이야기하면 되고, 존재하지 않는 기능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거나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어 전혀 쓸모없는 기능으로 만들어버리면 간단할 일이었다.

하지만 직접 상품 개발에 전담한 내가, 내가 만든 상품을 구입할 고객 앞에서 그것에 대해 설명할때는 나 자신이 그것의 단점과 버그를 너무 잘 알고 있는 탓에 차마 고객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2% 부족한 기능에 대해 고객이 아쉬워하면, 차마 간단히 금새 만들어 추가해주겠노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그 일을 해야하는 주체 또한 나였기 때문이다. 결국은 수많은 영업사원(영업하시는 분들을 나쁘게 이야기할 목적은 아닙니다)처럼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그 상황을 모면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곧 그것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한동안 도덕적 괴리감에 괴로워하고 있는 나를 본 그 상사께서는 아직도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하게 사용되고 있는 놀라운 언변술을 전수해주셨다.

구덩이 파서 묻기

일단, 내가 설명하려고 하는 상품/사건 에 대해 면밀한 SWOT 분석이 필요하다. 둘째, 내 앞에 있는 청중은 내가 기차 바퀴는 둥글다 라고 이야기하면, 기차 바퀴가 네모난 증거를 찾아 나를 곤란하게 하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적이다 라는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팔려고 하는 물건이 설명처럼 좋지 않다는 증거를 찾아내면 조금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평범하게, 상품의 좋은점을 판에 박힌듯 설명한다. 상대가 지루해할때쯤... 자 이제 내 말끝에서 나에게 불리한 발언이 나오기만을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상대에게 선물을 주자. SWOT 분석 결과 이 상품의 "단점" 이자 "기회"에 가까운 항목 하나를 골라 살짝 흘려주는거다. 상대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여 그 단점을 물고늘어질 방법을 찾는데 고심하느라고 정말로 좋지않은 다른 단점들에 대해서는 판단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때 또다시 상품의 장점을 이야기 하되, 이번엔 아까의 단점들을 보완/만회 할 수 있는 특장점들을 골라 이야기 하도록 한다. 상대는 나로 하여금 자신이 발견한 단점을 인정하도록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앞으로 이야기하는 어떠한 장점들을 인정하고서라도 자신의 판단을 사실로 만들고싶어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단점에 대해서도 '기회'로 만드는것에 성공했다면 매우 훌륭하지만, 그 단점을 인정해버렸더라도 이미 많은것을 얻은 뒤가 될 것이다.

여기까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것 같아서 간단한 예를 한번 들어본다. 굳이 단점을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훌륭한 상품인 Wii를 판다고 하자.

Wii는 온가족이 즐기기에 훌륭한 가정형 게임기입니다. 위치, 기울기, 속도 등을 감지하는 위모콘 이라는 컨트롤러를 이용하여 실제 게임상의 캐릭터처럼 움직이기만 하면 되므로 누구나 쉽게 게임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위콘이 훌륭한 발명품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지만, wii 와 xbox또는 ps3 구입을 두고 비딱한 시선으로 보고있는 구매자에게는 한가지 특징에 불과할 수도 있겠습니다)

* 이쯤에서 단점을 하나 풀어주도록 합시다

다만 다른 게임기에 비해 그래픽 사양이 좋지 않아서, 현실감있는 디테일한 그래픽보다는 단순하고 귀여운 구성의 2D또는 간단한 3D 위주의 게임이 많이 발매되고 있습니다.(이렇게 하면 실사와도 같은 뛰어난 그래픽을 자랑하는 ps3와 xbox 를 잘 알고있는 상대는, "그것봐 내가 wii 그래픽 안좋은지 진작에 알고있었어" 라고 생각하며 ps3와 xbox의 다른 장점들은 잊어버리고 ps3를 사고싶어했던 이유는 오직 뛰어난 하드웨어 라고 생각해버립니다. 더불어 GBA를 껍데기만 바꾸어 출시했느니 HD커넥터는 번들로 주지 않는다느니 하는 "좋지않은 그래픽에 관련된" 단점들만 떠올리게 됩니다.)

* 자 이제 청중들이 모두 구덩이에 이쁘게 들어간것 같으니, 그 단점을 커버하는 장점들로 가뿐하게 묻어줍시다.

하지만 wii는 그래픽 성능을 조금 낮춤으로써 열이 많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팬 소음이 발생하지 않으며 기판의 크기를 줄여서 cd롬 드라이브보다 조금 큰 작은 사이즈로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GBA의 기판과의 호환성도 보장이 되므로 추가 소켓에 컨트롤러를 연결하면 기존의 GBA 롬 역시 100%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본격적인 생산라인이 갖춰져있는 기존의 하드웨어를 사용하게 되므로 가격을 혁신적으로 낮추었습니다.

이쯤되면 상대는 자신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생각하게 만든) 이유를 잃어버리게 되고 또다른 단점을 찾아낼 정신적 여유를 확보하지 못하게된다. 실제로 wii는 DVD 리딩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성능때문에 dvd 플레이를 할 수 없다거나 하는 단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약간의 다른 단점들을 찾아냈더라도, wii는 절반의 가격이므로 그정도쯤은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라는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나는 이러한 협상 패턴을 거의 모든 생활에서 사용한다. 취직을 위해 나 자신을 팔때도, 상대에게 내 주장을 설득시킬 때도... 물론 이것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며, 말의 순서를 약간 바꿔서 상대가 나의 단점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을 막았을 뿐이다.

이뭐병씨가 이번에 그랬다. BBQ 사건이 터지자 수없이 말을 바꾸며 국민의 관심을 온통 그쪽으로 몰아간 뒤 (배후에서 조작을 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 사건이 무효화 되자, 그간 비난을 받던 모든 도덕적인 죄를 한꺼번에 면죄받는 효과를 누렸다. 더불어, 자신을 음해하려는 세력들에게 모함을 당했다 라는 동정표까지 확보하게 된 셈이다. 다른당 후보들이 병신같아보이는 이유도 그거다. 바보같이 떡밥을 제대로 물고 질질 끌려다니느라 닭쫓던 개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바보같은 정모씨와 이모씨는 아직도 미련을 못버리고 특검법이니 뭐니 해가며 끝까지 한번 물어볼 기세다 -_-;; 그 시간에 자신에 대해 한가지 사실이라도 더 홍보하거나 이뭐병씨가 장점이라고 내세운 공약의 헛점을 널리 알리는게 나은 시점에서 말이다.

"더러워도 좋다. 경제만 살려다오. 별다른 인물도 없지않은가" 라고 이야기하는 분들께 한가지 묻고싶다. 먹을만한것도 없고 영양가 없어보이는 식탁에서, 당신은 좀 더럽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고 적어도 영양가는 있어보이는 똥을 먹을텐가? 일단은 똥을 치우는게 우선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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